잡다한 사진

병아리풀 (월간 난세계 2018년 8월호)

태극농원쥔장_한현석 2018. 8. 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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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이 매력적인 1년초 ‘병아리풀’


(월간 난세계 2018년 8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13번째 이야기) 

 

아주 오래전에 강원도에 식물 탐사를 갔다가 하루 종일 산을 돌아보고 산의 초입쯤 왔을 때 바위위에 뭔가 꽃이 핀 것이 있어서 사진을 촬영해 와서는 식물 이름을 찾아봤던 적이 있다.


늘 그 식물을 본 계절은 가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 식물사진을 촬영하고 공개하는 인터넷 세상에 그 식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날씨도 무덥고 특별히 촬영할 것도 없으니 컴퓨터의 저~ 깊은 저장 공간에 들어있던 사진을 한 장씩 끄집어내서는 돌아올 가을을 기억하며 서로 간에 자랑을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사진엔가 안내 받은 데로 잘 찾아가서 무더위와 싸우며 촬영하고 왔다는 글이 있었다.

그럼 결국 촬영의 시기가 가을이 아니고 요즘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시간만 나면 야생화를 찾아 산야로 나가 야생의 꽃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요즘 병아리풀 촬영 다녀오셨나요?’ 얼마 후 돌아온 문자는 ‘예 며칠 전에도 다녀왔어요.’ 라는 문자였다.


어허~ 분명 몇 해 전 강원도에서는 가을에 본 것 같은데... 궁금증에 컴퓨터를 켜고 사진을 찾아봤다. 사진 정보를 확인해보니 8월22일 촬영분 이었고 꽃은 씨방이 잔뜩 달리고 위쪽에 몇 송이 꽃이 핀 상태의 사진이었다.

아마도 강원도의 시원한 느낌 때문에 막연하게 가을에 촬영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병아리풀은 무더운 요즘이 개화기가 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병아리풀 자생지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안내를 받은 시간이 점심식사를 마친 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 가방을 챙겨들고 출발했다.


산이라는 곳이 말로 안내해 준다고 그 장소를 쉽게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충 달려가 병아리풀이 자생할만한 곳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도저히 비슷한 장소도 없는 것 같다. “미안합니다. 여기가 어디쯤인데 자생지는 어디 쯤 일까요?” 이런 젠장... 자생지에서 약5km는 지나가 있다고 한다.


급하게 차를 돌려 쏜살같이 지나 왔던 곳으로 달려간다. 그 뒤로도 이곳저곳을 기웃 거려 겨우 자생지를 찾았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병아리풀이 자생하는 바위에 올라서는 순간 사우나의 열기 같은 지독스러운 뜨거움이 얼굴을 덮어 버리는 것이다.


아차! 아침 뉴스에 오늘 폭염 경보라고 바깥 활동에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무지하게 예쁜 아나운서가 잠자리 날개처럼 하늘거리는 옷차림에 더위를 잊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어찌해볼 도리는 없고 바위에 몸을 최대한 밀착하고 카메라 뷰파인더 속에 자리 잡고 나를 살살 유혹하는 병아리풀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두어장의 사진을 찍고 나니 벌써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눈가에 흐르는 땀 때문에 촬영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병아리풀(Polygala tatarinowii Regel)은 중, 북부 지역의 습기 있는 바위위에 자생하는 1년생 식물로 초장은 5cm 내외이고 개화기는 지역에 따라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편차가 조금은 큰 식물로 초장 역시 자생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잠깐 쉬고 다시 무더위 속에 촬영은 계속 되었다. 정신없이 작은 꽃에 초점을 맞추며 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도 한 장 찍으면 안 될까요?” 바위에 붙어 움직이지 않고 촬영하는 나를 한참 봤는데도 자리를 이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말을 걸었다고 하는데 산속에 누군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던 터라 사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또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병아리풀을 촬영하는 나의 카메라 화면 속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쓱 들어와서 화들짝 놀라는 일이 생겼다. 몇 분이 촬영을 왔는데 이분들은 이 자생지를 몇 번 왔다 갔던 분들이라고 한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무더운 한낮에 달궈진 바위에는 몇 사람이 달라붙어 작은 꽃 사진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꽃을 피해 뒹굴고 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속으로는 “미쳤지 미쳤어~” 라고 서로를 흉봤을 것이다.

이렇게 지독스러운 더위와 싸우며 병아리풀을 촬영해 왔는데 이 자생지가 얼마나 버티려는지 알 수는 없다.


그동안 뭔가 쉽게 볼 수 없는 야생화의 자생지가 발견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채 등으로 사라지는 것을 봐 왔는데 이번 병아리풀의 자생지는 제발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래본다.

병아리풀은 1년초이고 꽃이 작아 사진촬영의 소재로는 좋지만 관상용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으니 많은 생태 사진인 들이 폭염 속에 정성을 다해 만든 사진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란다.


내년 여름에도 병아리풀을 만나러 가볼 생각이다. 그때는 삼계탕을 미리 한 그릇 보양식으로 먹고 갈 계획이다. 혹시 닭 먹고 왔다고 병아리풀이 성질부리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