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사진

왕과(王瓜) (월간 난세계 2018년 9월호)

태극농원쥔장_한현석 2018. 9. 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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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짝을 찾지 못하는 ‘왕과(王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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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난세계 2018년 9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14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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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은 111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온 기록적인 여름이라고 한다.

무덥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방송에서는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었으니 외출을 삼가라는 뉴스가 전해지고

하루에도 몇 곳의 국가기관에서도 외출자제 문자가 전송되고 특히 농업기관에서는 셀 수도 없이 자주 논, 밭 작업을 하지 말아 달라고 문자가 도착하는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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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영상 40도를 오르내리는 사우나 같은 날씨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사우나는 온탕과 냉탕이 있으니 땀 빼고 냉탕으로 이동하면 되겠지만 이번 여름의 무더위는 에어컨이 없는 경우 하루 종일 사우나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대단히 위험한 폭염 속에 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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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스러운 무더위로 이른 아침 농원의 일을 간단히 마치고 에어컨 바람 나오는 거실에 누워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왕과(王瓜) 촬영 중입니다. 얼른 와서 촬영 하시지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진짜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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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더위에 사진 한 장 찍다가 더위 먹는 날이면 오랜 시간 고생을 할 것 같고

분명 국가 기관에서 낮에 외출하지 말라고 했는데 국가 기관의 조언을 무시하고 나갔다가 열사병이라도 걸리면

국가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서도 “쯧쯧~ 사진 찍다가 열사병 걸렸데~” 라고 손가락질 할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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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문자를 확인하니 전화한 지인이 보낸 촬영하고 있는 곳 주소와 약도였다.

결국 이렇게 촬영소재 만나고 자세한 안내까지 하는데 가지 않으면 그것 또한 연락 준 지인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라

주섬주섬 카메라 가방 챙겨들고 챙이 큰 모자 하나 눌러쓰고 촬영하러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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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준 주소와 약도가 있어서 쉽게 왕과(王瓜)자생지에 도착하니 지인은 촬영 끝내고 무더위를 피해 돌아간 듯하다.

도롯가 잡초들과 함께 자라고 있는 왕과는 기억도 없을 만큼 오래전에 스쳐 지난 후 만난 것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촬영도 하기 전에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지고 이럴 것 같아서 자동차는 에어컨 틀어놓고 시동도 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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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상태 확인하고는 자동차에 와서 열을 식히고 다시 나가 몇 장 찍고 후다닥 돌아와 열 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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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훈련인지 촬영인지 땀은 정신없이 흐르고 잡초들은 몸을 찌르고 아마도 누군가 이것을 일이라고 시켰으면 당장 때려치우고 욕 한바가지 하고 돌아왔을 것 같은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 촬영 나왔으니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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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王瓜 : Thladiantha dubia)는 잡종지에 매우 드물게 자라는 식물로

쥐참외, 주먹참외, 토과, 태적포, 기포등으로 불리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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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는 암수딴그루의 특이한 식물로 실물을 보기도 어렵지만 어렵사리 만나 실물을 본다하더라도 주로 숫그루 이기 때문에 암그루와 열매를 본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식물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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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그루가 없다보니 씨앗을 만들기 어려워 번식에 어려움이 생기고

자생지 역시 인가 주변의 잡종지로 제초제나 개발등으로 자생지가 훼손되기 쉬운 장소에 있어서

올해 만난 왕과를 내년에 다시 본다는 보장도 없는 매우 희귀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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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한 왕과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예전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왕과의 뿌리를 캐서 먹을거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왕과는 황달과 간경화, 변비, 소변이 잘 안 나오는 데, 당뇨병 등에 효과가 있고

알뿌리를 즙을 내서 마시면 간경화에 도움이 되고 동상이나 화상에도 효과적인 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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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다양한 병의 치료에 사용하던 약재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약재로 사용하려 재배하였기 때문에 인적 드문 민가 주변에서 간혹 자생하는 모습이 발견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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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싸우며 왕과 숫그루를 만나 촬영을 하고 돌아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사진을 감상하고

몸의 열기가 식고 보니 벌써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 거리가 생겼다.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내년에는 왕과 암그루를 만나봐야겠다.

열매는 작은 계란만 하고 붉게 익는다고 하는데 암,수 그루에 열매까지 촬영을 마쳐야 한 가족이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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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자생지에서도 촬영을 하면서 설마 숫그루가 있으면 어딘가 암그루도 있겠지... 하고

주변을 살펴봤지만 역시 왕과는 짝을 찾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 맞는지 모든 그루가 숫그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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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모두 독특한 면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왕과처럼 암수딴그루에 암, 수가 전혀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며 만나지 못하는 이상스러운 특징을 가진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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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무더위와 함께 했던 왕과 주변의 도로도 확장 공사를 하고 있던데 제발 왕과 자생지는 개발이나 제초 작업등으로 사라지지 말고

내년에도 후년에도 노란 꽃을 피워주기를 바라고 내년 촬영 갈 때는 폭염도 없어서 좀 더 멋스러운 사진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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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는가? 좋은 장소에서 암그루 자생지 만나 이번 숫그루에게 중매 설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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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화훼농원 한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