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어리연꽃(월간 난세계 2020년 1월호)
다시 찾아 감동적이었던 ‘흰어리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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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난세계 2020년 1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26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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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도 20년 전 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 주변에서 흰어리연꽃이 필요하다고 하면
겸사겸사 충남의 외진 바닷가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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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경계로 나지막한 둑을 만들어 민물을 가두어 둔 곳이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것도 저주지라 표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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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수지에는 흰어리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었는데
그 곳을 가면 낚시꾼들이 고기잡이에 방해가 된다고
어김없이 흰어리연꽃을 걷어냈기 때문에 “많이 잡으셨나요?” 라는
인사를 하고 비닐봉투에 걷어낸 어리연꽃을 담아 와서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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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은 몇 해 가지 못하고 물이 오염되기 시작하고
낚시꾼도 사라지더니 결국 흰어리연꽃도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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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품종이 사라지는 것은 서운함도 느끼지 못할 만큼 빨랐다.
얼마나 빨리 자생지가 사라졌는지 충남 바닷가 자생지는
사진 한 장도 찍어두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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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동안 흰어리연꽃은 야생화 판매점의 고무 대야에서만
간혹 구경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을 볼 때마다
사라진 자생지에 대한 아쉬움과 어딘가에 있을
새로운 자생지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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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만하면서 몇 년이 흐른 후
지인이 가까운 곳에 좋은 사진 소재가 있다고 연락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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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의 작은 저수지에 가시연꽃이 피었다는 소식이었다.
가시연꽃 역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는 귀한 식물이니
카메라 가방 둘러매고 달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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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처럼 스마트폰의 위성지도나
네비게이션 등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가시연꽃이 자생하는 저수지를
전화 통화만으로는 찾지 못하고 엉뚱한 저수지를 만나서
이리 저리 저수지를 돌아보던 중 가슴 뛰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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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찾지 않는 작은 저수지에는
그동안 자생지를 찾아보려 노력했던 흰어리연꽃이 수면 가득 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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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파일 속성을 확인해보니 2008년으로 되어 있었고
이 사진은 흰어리연꽃이 필 때면 아무도 찾지 않는
작은 저수지를 한가롭게 거닐며 촬영한 것으로
이곳을 찾은 것도 10년 이상 지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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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저수지의 흰어리연꽃은 무더운 여름 개화기가 되면
언제나 찾아 꽃을 감상했고 이렇게 감상하는 것은 원하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다 보니
다른 식물을 찾아 헤매느라 2~3년 정도 눈길을 주지 않았고
어느 순간 그것이 미안스러워 햇살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작은 저수지로 달려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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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이 더 좋아져서 저수지의 수면 가득
흰어리연꽃이 자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달려갔지만
저수지에 도착하여 한동안 자동차에서 내리지도 않았었다.
창문 넘어 눈에 들어온 저수지는 연꽃이 순식간에 번식을 하여
수면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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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정신을 가다듬고 흰어리연꽃이 연잎아래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을 것 같아
주춤거리며 물가로 내려가 봤지만 흰어리연꽃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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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설마 혼자 말을 하면서 저수지를 모두 둘러봤지만
거짓말처럼 흰어리연꽃은 한 개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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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막강한 세력에 눌려 흰어리연꽃의 자생지는 몇 해 만에 사라지고 말았고
그 후에도 몇 번 저수지를 찾았지만
흰어리연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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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자생지 사라짐을 보면서 흰어리연꽃은 귀한 식물로
확실한 자리 매김을 하는 것을 넘어
보호식물 혹은 멸종위기 식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할 지경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간혹 천안이나 그 외의 지역에서
흰어리연꽃의 작은 군락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드넓게 자리 잡았던 군락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판국에
작은 몇 포기 정도의 자생지는 의미가 없다는 마음에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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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지난해 여름 지인의 SNS에 흰어리연꽃의 사진이 등장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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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하고 있는 것이라 보기에는 뭔가 느낌이 다른 사진이었지만
시간과 햇빛이 적절한 순간에 촬영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가
자연에서 촬영한 것인지 질문을 했고
자생지라는 답을 들었지만 이미 개화기가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답사를 미루다
드디어 올해 여름 개화기에 알려준 장소를 스마트폰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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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펼쳐진 #흰어리연꽃(Nymphoides indica) 은
누군가 찾아주지 않아도 수면을 뒤덮어가며
작은 흰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있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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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생지는 극단적인 오염의 염려도 없을 것 같고
천변이기 때문에 누군가 수련을 심어 자생지 훼손을 할 것 같지도 않아
오랜 기간 멸종의 염려 없이 자라고 꽃을 피울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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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천변이라는 환경 때문에 폭우에 의한 범람 등
자연 환경의 변화로 인한 걱정은 있지만
그동안 만났던 자생지에 비하면 안정적인 장소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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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지를 찾아 작은 흰 꽃의 유혹에 넘어가
흰어리연꽃을 길러보려 한다면 뿌리까지 뽑지 말고
수면에 떠 있는 잎을 한 장 잘라오면 번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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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잘라온 잎을 작은 대야에 물을 담고 담궈 두면
가을 찬바람이 불면서 잎이 녹아 사라지고
뿌리만 물속으로 가라 앉아 있다가 겨울을 지나고 봄에
줄기가 길게 자라며 잎을 펼치고 꽃을 피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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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점은 대야를 추운 곳에 그대로 둬도 되지만
뿌리까지 얼음이 얼면 흰어리연꽃이 죽기 때문에
얼음이 심하게 얼지 않는 장소에서 겨울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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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돌아오면
또 다시 카메라 들고 흰어리연꽃을 감상하러
자생지로 달려갈 준비를 지금부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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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라 흰어리연꽃 군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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