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사진

흰병아리풀(월간 난세계 2021년 10월호)

태극농원쥔장_한현석 2021. 10. 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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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노른자를 품고 있는 흰병아리풀

(월간 난세계 202110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46번째 이야기)

 

몇 해 전 무더운 여름 병아리풀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병아리풀은 개화기가 길기는 하지만 무더운 여름이 제철이기 때문에 이 작은 병아리풀은 만나고 사진으로 남기려면 무더위와 싸울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품종이다.

 

올해도 지독하게 무더운 여름이었기 때문에 야외활동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오히려 산과 들로 나가 식물 자원을 조사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무더운 여름을 온통 산과 들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돌아다니며 다양한 식물들의 식생을 조사하다 보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추억 속의 식물도 만나서 미소를 짓기도 했는데 절개지 비슷한 돌산을 살피다 보면 병아리풀도 간간히 보이고 눈꼽 만큼이나 작고 귀여운 꽃이 한두송이 핀 것을 보면서 지금이 여름의 한가운데쯤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간혹 만나는 병아리풀을 보면서 계절을 실감하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이 당연한 것이라고 위안을 하며 보내던 어느 날 사람을 유혹하는 사진이 몇 장 인터넷 세상에 올라오는 것이었다.

 

#병아리풀 #Polygala_tatarinowii_Regel 은 연한 자주색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 기본적인데 올려진 사진은 흰꽃이 피어 하늘거리고 있었다.

 

사실 기본형의 병아리풀도 만나거나 보기 어려운데 그 꽃의 변종인 #흰병아리풀 의 사진이라면 생태사진가이기도 한 나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만사 뒤로하고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서 달려가고 싶었지만 하던 일이 있고 그 일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산과 들로 돌아다녀야 하니 그냥 침만 꿀떡 삼키고 시샘이 가득한 마음으로 간간히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겼고 지인이 찾아와 산속의 야생화 촬영을 가자고 하는 바람에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자동차에 올라 콧노래 부르면 내달려서는 산속 길을 올라 다양한 야생화들이 꽃을 피운 장소에 도착하여 촬영을 하고 돌아오려고 준비하는 순간 잊고 있었던 병아리풀이 생각났다.

 

시간을 보니 어둡기 전에 군락지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아리풀 자생지로 달려 도착을 했지만 이미 태양은 서산을 넘어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몇 장의 사진을 찍는 순간 흰색으로 꽃이 핀 흰병아리풀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숨을 몰아쉬고 카메라의 ISO를 높혀 흰병아리풀을 몇 장 찍고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통해 사진을 확인해보니 이것은 어두운 시간에 촬영한 것이라 사진이라 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그냥 흰병아리풀의 실물을 본 것으로 만족하며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좀처럼 시간이 없어 만남을 포기하려는 순간 비가 온다는 소식에 하루 일정이 밀려버려 생각지 못하게 시간이 생겼다.

 

이른 아침부터 밖을 살펴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화가 난 하늘이기는 하지만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시간은 없고 미루다가는 올해 병아리풀과 흰병아리풀을 감상하기는 어려울 듯 하여 무작정 자생지로 출발을 했다.

 

자생지에 도착하여 작은 꽃을 촬영하겠다고 머리를 바위에 붙이고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흐린 날씨이지만 바위산은 습한 공기까지 합해서 열기가 연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땀 흘릴 생각도 못하고 찾은 자생지에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언제 또 볼지 모를 흰병아리풀을 촬영하겠다고 별 희얀한 포즈로 촬영을 하는 나를 낄낄거리며 달려든 모기들은 연신 물어 뜯어가며 만찬을 즐기는 듯하다.

 

개화기가 지나가고 있어서 씨앗이 잔뜩 달린 모습을 한 흰병아리풀이지만 나름의 멋을 찾아 귀한 녀석들을 사진으로 남겼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병아리풀은 매우 작은 식물이다. 식물체가 작으니 꽃 역시 작은 것이 특징이라 할수 있다.

무엇인가 작은 것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손톱 만 하다.”라고 하는데 병아리풀은 손톱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할 정도로 작은 식물이다.

 

이 작은 꽃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흡사 계란의 노른자처럼 둥근 모양의 꽃잎이 한 장 달여있어서 병아리풀이란 이름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병아리풀은 1년초이기 때문에 자생지의 환경이 변하면 한순간에 사라져 보기가 어려워지는데 병아리풀을 만날 때마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흰병아리풀 자생지 역시 누군가 훼손을 하지는 않겠지만 환경이 열악하고 위태로워 볼때마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열악한 환경 내년에도 잘 버티고 화사하게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계란 노른자처럼 생긴 꽃잎 감상을 할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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