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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진

고란초(월간난세계 2017년 1월호)

by 태극농원쥔장_한현석 2016.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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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여러분과 만나게 되서 무한한 영광이고 반갑습니다.
지난 2013년 12월, 100회를 마지막으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야생화 자생지 여러 곳을 다녀왔고 국외의 야생화 자생지도 여러 곳을 방문하며 새로운 식물들과 눈 맞춤 했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운 품종들도 생겨나고 있어서 마음이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중 한 품종인 ‘고란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고란초(Crypsinus hastatus)는 충남 부여의 고란사(皐蘭寺) 절벽에서 발견되어 고란초라 부른다고 하지만 이제는 고란사 절벽에서 고란초를 볼 수는 없다. 뭔가 귀하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 무작정 씨를 말리며 뽑아가 버리거나 자생지 주변의 환경이 바뀌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고란사 주변에서 고란초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인 것은 고란초가 고란사 주변에서만 자생하는 것이 아니고 전국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장소에서 조금씩 자생하고 있고 자생지가 식물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십수년전 충주에서 제법 큰 규모의 고란초 자생지가 발견되었는데 그때 고란초가 확실한지 확인해 달라고 해서 먼 길 부지런히 달려가 확인했던 적이 있다. 길도 없는 험한 자생지를 찾아가 확인하는 순간 “우와~” 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땀 뻘뻘 흘리며 찾은 고란초 자생지에는 벌써 누군가의 손에 고란초는 모두 뜯겨나가고 바위절벽 아래 떨어져 말라비틀어진 고란초 부스러기만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탄성이 아닌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 뒤로 남해지역으로 야생화 탐사를 나갔다가 길도 없는 험한 산골짜기에서 고란초의 자생지를 만나 한동안 주저앉아 고란초를 살피던 기억이 있다.
다시 그 자생지를 찾아가 보고 싶지만 무작정 돌아다니던 산속이었기 때문에 그곳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아 다시 가 보지 못했다.

그 후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고란초 자생지를 두어곳 찾았고 자생지를 공개하면 그 즉시 자생지가 사라질 것 같아 고란초가 보고 싶을 때 혼자서만 살짝 자생지를 찾아 사진도 찍고 환경도 살피다가 혹시 자생지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려두고 시간나면 한번씩 영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몇 년 동안 고란초는 머리에서 잃어버리고 있었다.

올해 몹시도 무더운 여름에 존경하는 농과대학 교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우리 농원을 찾아 주셨다. 
“혹시, 고란초 실물 조금 구해줄 수 있나요? 요즘 고란초에 대해 연구 중인데 실물 구하기가 어렵네요. 실물이 어려우면 포자라도 구하고 싶은데...”
“고란초 자생지 알고 있으니 며칠 안에 잠깐 시간 내서 실물 조금과 포자 구해 드릴께요.”
자생지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도 아니고 포자는 고란초 잎이 어느 정도 크면 잎의 뒤에 많이 붙어 있으니 포자 수집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 자신 만만하게 말씀을 드렸다.  

세상이 다들 그런 것처럼 특별히 바쁜 일도 없더니만 교수님과의 약속 이후로 뭐가 그렇게 바쁜지 자생지는 커녕 그 인근을 지날 시간도 없이 날짜가 지나갔다.
“저기... 너무 어려운 부탁을 했나요? 금전적인 보상을 해 드려야 하는지요...” 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셔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아니요~ 아니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자생지를 가지 못했어요. 금전적인 보상도 필요 없고요. 3일만 시간을 주세요.”
없는 시간 쪼개고 타 죽을 것 같은 햇살을 뒤로하고 고란초 자생지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으악~” 자생지에 도착해서 기절할 뻔했다. 혼자만 아끼고 살펴보던 제법 큰 고란초 자생지는 산의 끝자락과 작은 골이 만나는 장소라 사태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시멘트로 튼튼하고 예쁘게 사방 공사를 마무리해 두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봤지만 공교롭게도 고란초 자생지만 시멘트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 곳에 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 없으니 안전을 위한 사방공사에 대해서 항의하거나 불만을 가질 수 도 없는 노릇이다.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자생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 라는 들릴 듯 말 듯 한 탄식 소리는 뭐라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먼 곳의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지난번 교수님의 탄식 소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알고 있는 작은 고란초 자생지로 차를 돌렸다. 양복에 구두 신은 그대로 산속을 헤집고 자생지를 찾아가보니 사람 발길이 없는 장소라 군락의 규모가 조금은 더 커져 있었다. 
몇 개의 고란초를 채집하고 포자를 수집하고는 즉시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 고란초 구했습니다. 2시간 후에 집에 도착하는데 어떻게 전달해 드릴까요?” “정말로요? 그럼 농원으로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잠시 후에 만나요” 들뜬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졌고 그렇게 고란초는 연구실로 들어갔다. 

고란초의 자생지는 이렇게 훼손이나 개발로 인하여 점점 보기 어려운 식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귀한 식물이라고 혹시라도 길러보려 한다면 한마디 드리고 싶다. “고란초 절대 가정에서 기를 수 없으니 채집하지 말아주세요~” 알려지지 않은 자생지의 고란초들이 잘 살아 갈수 있도록 혹시라도 자생지를 알고 있다면 눈으로만 즐기고 보존해 주길 바랍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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