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 지킴이 ‘한라꽃향유’
(월간 난세계 2018년 1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09번째 이야기)
제주도는 언제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미지의 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웃음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는 곳이다.
국제선 비행기는 신발 벗고 타야 하지만 제주행 비행기는 신발 신고 타라고 하거나
제주도 가는데 꼭 여권 챙겨야 한다고 하는 등
알면서도 웃고 그 웃음 속에 긴장감도 살짝 맴돌며 제주도로 향하기도 한다.
제주도에 살거나 그곳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찍어 인터넷 세상에 올리는 멋진 사진들을 바라보며 시간이 허락하고 지리를 잘 알거나 아는 사람만 있다면 제주도의 식물들 탐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멋진 제주도의 풍광 속 식물 사진을 침 흘리며 바라보던 며칠 전, 나 역시 미지의 땅처럼 느껴지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다.
일정의 주목적은 특정한 식물의 군락지를 살펴보고 조금의 종자를 받아 올 생각이었다.
해 넘어간 제주도 국제공항은 삼삼오오 모여 여행으로 들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재미진 이야기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혼자 공항 주변을 둘러보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부터 문제투성이였다.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공항주변 여관... 모텔... 호텔 등을 검색하고 그중 이름이 가장 맘에 드는 곳으로 전화걸기 기능을 이용하여 전화를 한다.
“숙박할 방이 있나요?”
“얼마입니까?”
“택시타고 가면 되나요?”. 해결되었다.
택시 승차장을 찾아 줄서서 순번에 의한 탑승.
“ㅇㅇ모텔 가주세요” 제주도를 잘 아는 사람의 톤으로 기사분께 부탁을 하고 여유를 부려볼 요량이었는데
이런 “젠장!~” 벌써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하는 것이다.
동서남북 구분은 가지 않지만 하여간 숙박업소에 도착을 했고 간단히 저녁도 먹고 아침을 기다려본다.
아침이다.
얼굴도 모르지만 난초를 취미로 기른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번호를 알게 된 제주도의 난인에게 오늘 하루를 신세질 것이다.
고맙게도 자동차를 가지고 모텔로 찾아오셨다.
이런 저런 제주도에 온 목적을 이야기하니 자동차를 몰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목적지에 내려 식물 군락지를 살펴봤지만 이미 그곳은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에 들어간 장소였다.
제주의 해발 고도별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너무 늦은 시기에 목적지를 찾은 것이다.
보려던 식물은 깊은 겨울잠에 빠지고 황량한 군락지만 바라보며 맨땅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이런 사진은 공항 주변 공터를 찍어도 같은 모습일 것 같은데 말이다.
자동차는 내리막을 달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주차한다.
점심을 먹는 듯 마는 듯 머리는 뒤숭숭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혹시 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질문 하신다.
어차피 신세지는 것 오름 구경이나 하면 좋겠다고...
거기에 며칠 전 사진으로 봤던 ‘한라꽃향유’나 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얼른 식사 마치고 달려가 보자고 한다.
한참을 달려 오름에 도착을 했다.
해발365m, 오름 높이 132m. 한달음에 뛰어 올랐다.
중간 중간 한라꽃향유는 보였지만 오름 꼭대기에서 먼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쉬지 않고 올라왔다.
오름 꼭대기의 한라꽃향유를 이리 저리 사진에 담고 나니 제주도에 와서 무엇인가 건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다른 오름에 가보자고 한다.
다시 자동차로 이동한 오름에도 한라꽃향유는 보라색 꽃을 피우고 오름을 찾은 등산객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눈여겨 봐주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관광객들의 등산화에 걷어차일 듯 등산로 주변에 달라붙어 꽃을 피우고 있지만 역시나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뿐이었다.
‘한라꽃향유’는 전국의 산야에 흔히 자라는 ‘꽃향유’와 비슷한 모양과 꽃을 피우고 있지만 키가 매우 작은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의 가을을 책임지는 꽃으로 비교적 높은 고산지역부터 바닷가까지 흔하게 자라는 야생화라 한다.
학명은 Elsholtzia hallasanensis Y.N.Lee 라고 하는데 이 학명은 정식으로 등록된 것은 아닌 듯하다.
외국에서는 한라산 고산지대에 자라는 ‘좀향유(Elsholtzia minima Nakai)’와 ‘한라꽃향유’를 같은 식물로 보고 학명을 같이 사용하는 듯하다.
수도 없이 많은 오름 중에서 겨우 두곳의 오름을 오르며 본 한라꽃향유는 분명 제주의 오름을 지키는 꽃이란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관심 없이 지나치고 있지만 가을의 밋밋한 오름에 보라색 물감을 칠한 것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있으니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관상하기 좋다는 이유로 많은 종류의 야생화들이 남획으로 인한 훼손이 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 한라꽃향유는 1년초이기 때문에 남획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 다행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더니 제주도를 방문한 원래의 목적은 계절을 가늠하지 못한 덕분에 허사가 되고
대신 만난 한라꽃향유는 눈을 즐겁게 했지만 급하게 오른 오름 등산 덕분에 장단지는 알이 단단히 박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운동으로 단련된 다리로 오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벌써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한라꽃향유를 다시 만날 때를 지금부터 기다리게 되는 것 보면 매력이 넘치는 야생화중 하나 인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틈틈이 운동해서 다음번에는 오름 3~4개쯤 오르내리며 한라꽃향유를 실컷 보고 와야겠다.
(태극화훼농원 한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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