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밥도둑이었던 ‘벼룩나물’
(월간 난세계 2023년 10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63번째 이야기)
일급비밀을 공개하자면 우리 어머니는 음식을 못 해도 정말 못하는 분 중 으뜸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음식에 자신이 없으니 늘 상에 올라오는 것이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김치찌개 와 계란후라이가 빠짐 없이 올라왔었다.
도시락에도 계란후라이가 하나 덮여 있고 만들 때마다 맛이 다른 콩자반도 한쪽에 들어 있었다.
제법 살림살이가 여유로워서 김치찌개와 후라이는 매일 먹을 수 있었고 이런 종류의 요리는 음식을 잘하고 못하고의 구분이 없이 그냥 익히기만 하면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찌개를 매일 먹으며 지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우리 어머니가 자신 있게 만들어 주던 반찬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배추겉절이 인데
이것 역시 어린 시절은 몰랐지만 청년 시절 주변을 돌아 다니며 다른 집의 겉절이를 먹게 되면서 우리 어머니의 겉절이는 매우 심심한 맛이라는 것을 알고 살짝 실망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배추겉절이와 쌍벽을 이루며 무쳐준 것이 있으니 그것이 #벌금다지 무침이었다.
봄이면 거의 매번 벌금다지 무침이 밥상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언제 먹어봐도 벌금다지의 맛은 입맛이 돌게 만들고 밥 한 그릇을 간단하게 비울 수 있는 어머니표 특제 반찬이었다.
배추겉절이와 다르게 벌금다지 무침은 우리 어머니의 것이 가장 맛이 좋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어린 시절이 지나 청년이 되고 1982년부터 태극화훼농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식물을 기르고 판매하는 농원을 운영하며 언제나 한쪽에 의문으로 남아 있던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봄이면 맛난 밥도둑이었던 벌금다지라고 불린 것이 식물명으로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것이 있었다면 녹색 창에 벌금다지라고만 써 넣어도 친절하고 확실하게 식물명을 알려 주었겠지만
그런 것이 없던 시절에 #야생화 도감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찾아봐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어머니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으며
주변에 나이 드신 분들에게 혹시 아시느냐고 질문을 해 봐도 전부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머릿속에 의문으로만 담아 두고 지내던 어느 봄날 어머니와 함께 시외로 일을 보러 갈 일이 생겨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며 어머니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혹시 벌금다지 찾을 수 있으세요?”
어머니는 자신 있게 말씀을 하신다. 논이나 밭 주변을 살피면 벌금다지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침으로 만들기 전의 식물체를 찾는다면 실물을 눈으로 확인해서 식물명을 찾거나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동차를 한적한 논둑 주변에 세우고 내려 벌금다지를 찾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한참을 찾았지만 어머니는 벌금다지를 찾지 못했다.
“분명 이런 자리에 흔하게 자랐는데 보이지 않네...”
벌금다지는 논과 밭을 관리하는 방법이 바뀌고 잡초 제거를 위하여 제초제를 뿌리는 등 환경이 바뀐 것이 원인인지 흔하게 볼 수 없는 식물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날 결국 벌금다지는 찾을 수 없었고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고 마음 한쪽 구석에 보관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는 또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시골 #장날 구경을 갔다가 시장 한쪽에 나이 드신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판매하는 푸성귀 무더기에서 드디어 벌금다지를 어머니가 발견하고는 보물을 발견한 것 처럼 나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야야~ 여기 벌금다지 있다~”
어머니는 벌금다지 무더기를 싼값에 구입 할 수 있었고 나는 무침으로 변하기 전의 벌금다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실물을 봐도 품종명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또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식물 탐사를 하려고 산의 초입의 작은 개울을 건너려는데 발밑에 눈에 익은 식물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본 식물인지 한참 고민한 후에 이것이 장날 만났던 벌금다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성이 잘 보이도록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 와서는 서적을 뒤적여 드디어 벌금다지의 식물명을 찾았으니
그 벌금다지의 식물명은 #벼룩나물 ( #Stellaria_alsine var. undulata )이었다.
벼룩나물은 2년생 식물로 씨앗이 떨어진 당년은 작은 모종의 상태로 살아남았다가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면 미친 듯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면 줄기 전체가 죽어 버리는 식물이다.
봄 햇살을 받고 몸을 키운 벼룩나물은 나물꾼의 손에 뽑혀서 맛있는 반찬으로 변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벼룩나물을 만나려면 습기가 있는 묵은 밭둑이나 오염이 되지 않은 산의 초입 개울가등을 찾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식물이다.
또 다른 방법이라면 시골의 장날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노인들의 #푸성귀 무더기를 살피면 볼 수 있다.
어느 날 벼룩나물을 한 무더기 구입하여 들고 왔었다.
어머니가 사용했을 법한 각종 양념과 간장을 이용하여 무침을 만들어 보았다.
꾸역거리며 먹을 정도는 되었지만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벌금다지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조용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해 본다.
“엄마 벌금다지 무칠때 어떻게 하는 거유~”
“몰라 그냥 대충 이것저것 넣고 조물거리면 먹을만해~”
결국 우리 어머니는 어떤 조리법을 가지고 무침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연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에 적당한 양념을 생각하지 않고 사용하여 맛있는 반찬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벼룩나물 무침이라고 하면 맛없는 반찬이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이란 느낌이 드는 반면에
벌금다지 무침이라고 하면 어느새 입안에 침이 고이고 따스한 밥이 떠 오른다.
더 늦기 전에 봄이 돌아오면 장에 나가 벼룩나물은 사지 않고 벌금다지 한 무더기를 사서는 집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그냥 대충 조물거린 엄마표 #밥도둑 벌금다지 무침과 김이 모락거리는 밥 한 그릇 어머니와 마주 앉아 먹고 와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
#행자부_신지식인 04-11호
#농림부_신지식농업인 162호
#태극화훼농원
#한현석
.
.
#청주지역 #야생화농원 #태극화훼농원 #야생화판매 #한현석
'잡다한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마가지나무 (월간 난세계 2024년 1월호) (2) | 2024.01.09 |
---|---|
여우구슬 (월간 난세계 2023년 11월호) (0) | 2023.11.06 |
맥문동 (0) | 2023.09.13 |
산자고 (0) | 2023.09.06 |
연분홍 큰낭아초(월간 난세계 2023년 8월호) (0) | 2023.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