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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사진

장구채 (월간 난세계 2025년 2월호)

by 태극농원쥔장_한현석 2025.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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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잘 만난 장구채


(월간 난세계 20252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75번째 이야기)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야생화는 그저 성가신 잡초일 뿐이었다.

인가 주변이나 발길 뜸한 산의 초입 초지 등에 흔하게 자라고 있었고 쓸모도 없었으니 누구 하나 눈여겨 봐 줄 생각도 없는 꽃이라기 보다는 #잡초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흔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야생화의 한가지 품종은 요즘 보기 어려운 품종으로 변해 있었다.

이 품종을 만나려면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부탁을 해야 겨우 몇 포기를 만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이었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장구채 구경을 할 생각이 있느냐고 했다.

잡다한 일들이 밀려 있어서 먼 길이라면 자생하는 장소를 알려주시길 부탁드리며 혹시 가까운 곳이라면 꼭 구경을 가고 싶다 말씀드렸더니 주소를 보내 주시겠다고 했다.

 

잡초처럼 취급하던 장구채이지만 요즘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야생화가 되어 버린 야생화를 만나볼 생각에 흥이 절로 나며 주소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주소가 문자로 도착했다.

지도에 주소를 입력하고 거리를 살펴보니 우리 집에서 1시간 내외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다음 날 아침 부지런히 아침 일을 정리하고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챙겨서는 길을 달려본다.

 

도착한 장소는 인적이 드문 산길의 한 장소였다.

산길을 이리저리 걸어봤지만 도통 장구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논둑도 걸어보고, 밭둑도 살펴보고, 산길의 잡초가 우거진 초지도 허리를 굽혀가며 살폈지만 장구채를 찾기는 어려웠다.

 

혹시 너무 오랜만에 찾는 것이라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구채의 모습을 다른 품종과 헛갈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이미지를 검색해 본다.

머릿속의 장구채와 검색한 이미지는 같은 것이었으니 찾지 못할일이 아니지만 땀을 흘리며 들러봐도 장구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미지근하게 변해버린 생수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처음의 자리에서부터 장구채가 자랄 만한 곳을 정리해 보고

예전에 흔하게 자라던 장소와 분위기가 비슷하게 생긴 곳을 걸어가며 찾아봤지만 역시 장구채는 찾지 못했다.

분명 전달받은 주소는 이곳이고 주변에는 논과 밭이 있고 야산으로 향하는 좁은 농로가 이어진 곳으로

인적도 없는 한적한 장소이니 누군가의 손길에 하루 이틀 만에 사라질 것도 아니니 은근히 짜증이 밀려온다.

 

이렇게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도 찾지 못하니 역시 장구채는 세월따라 잡초에서 정말 귀한 야생화로 신분이 변해 버린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적 드문 야산 초입에서 갈팡질팡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리 크지 않은 대추나무 과수원에 주인의 눈을 피해 숨어서 익은 작은 대추 몇 알이 눈에 들어왔다.

수확은 마무리 된 과수원인 것 같고

옛말에 대추를 보고 먹지 않으면 늙는다.라고 했으니 그것이라도 따 먹을 욕심에 울타리도 없는 대추밭으로 들어갔다.

먹을 것도 없을 것 같은 작은 대추를 따려고 나무 가까이 가며 발아래를 보는 순간 그렇게 찾고 있던 장구채 몇 포기가 눈에 들어왔다.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가까이하고 전쟁터의 군인이 주변을 경계하듯 살펴보니 여기저기 장구채가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대추 과수원의 주인은 나무 아래 잡초들을 제초제로 죽이지 않고 풀을 베며 관리를 하는 것 같았다.

 

#장구채 ( #Silene_firma )는 초장이 30~100cm이고 개화기는 6~9월인데

이 과수원은 풀을 베며 관리한 덕분에 이곳 장구채는 적심을 한 것처럼 초장은 10~30cm 정도이고

꽃 역시 줄기에서 새순이 자라 나와 피었기 때문에 10월에서야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초장이 작게 자라고 있었으니

예전의 잡초 사이에서 흔들거리며 큰 키를 자랑하던 모습을 상상하면서는 장구채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심으로 인해서 키가 작게 자란 대추 과수원의 장구채는 사진 찍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큰 키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왔기 때문에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여유롭게 촬영할 생각으로 햇빛 가릴 챙 넓은 모자 하나 챙겨 왔지만

키가 작은 과수원의 장구채를 찍으려면 얼굴을 땅에 처박고 궁댕이는 하늘로 향하는 실로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촬영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척박한 밭이라 땅에 붙은 얼굴에는 날카로운 작은 돌들이 파고들어 고통과 함께 숨을 참아가며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인 줄 알았다면 바닥에 펼치는 푹신한 보호장비를 들고 올 것을 하는 아쉬움과 함께

장구채 너~ 세월 잘 만나서 이 고생하며 찍는 거야~”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장구채의 꽃은 그리 예쁜 모습도 아니고 꽃의 크기도 작은 편이라 눈길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생태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은 보기 어려워진 품종이기 때문에 장구채가 자라는 장소가 발견되면 너 나 없이 촬영을 하려고 달려가는 야생화가 되어버렸다.

 

장구채 만난 기념으로 얼굴에 잔 상처가 생겼지만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마음에 등줄기 땀이 흘러도 즐겁게 인적 드문 작은 과수원을 한참 동안 돌아다닌 것 같다.

아마도 이 장소의 장구채는 과수원 주인분의 환경친화적 농법 덕분에 사라지지 않고 번성할 것이란 느낌으로 돌아왔다.

 

세월 따라 이렇게 대접이 달라지는 야생화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흔한 것이라도 눈도장을 많이 찍어 두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 장구채를 만난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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