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이 옷깃을 노리는 ‘큰도둑놈의갈고리’
(월간 난세계 2024년 10월호 : 연재 연속 번호 172번째 이야기)
무더위가 꺾일 기미조차 없다.
절기가 어쩌고 하면서 조금만 참고 있으면 더위가 가실 것이라 이야기들을 했었다.
입추가 지나면...,
처서가 왔으니...,
이슬 내리는 백로이니 더위는 지나간 것이라 했지만 무더위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연일 폭염으로 움직이기도 힘이 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깊은 산속으로 길을 나서 봤다.
길가에 무더위와 힘든 싸움을 하며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지만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열기에 달아오른 뜨거운 지온이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숨이 멎을 것 같이 뜨겁고 등줄기엔 연신 땀이 흘러내려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
발길을 돌려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이었지만 기왕 나왔으니 무엇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숲길을 걸어 봤다.
큰 나무들이 자리 잡은 숲속으로 들어가니 그나마 열기가 식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걷는 것이 부드러워지는 듯하다.
얼마 동안 숲길을 걸었을 무렵 저쪽 큰 나무 주변에 분홍색 작은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나무 아래에는 #큰도둑놈의갈고리 ( #Desmodium_oldhamii )의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큰도둑놈의갈고리는 전국의 산야에 자라는 다년초이지만 생각보다 흔하게 보기는 어렵다. 무더운 시기에 산속의 야생화를 찾아 나서다 보면 간혹 볼 수 있는 품종으로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초장이 70~100cm 정도로 크고 반 그늘진 장소에서 자라기 때문에 셔터스피드도 나오지 않고 바람에 흔들거려 좀처럼 예쁜 사진을 찍기에 어려움이 있는 야생화이다.
이날 역시 흔들거리는 꽃을 바라보고 있다가 잠깐 멈춘 순간에 셔터를 눌러 사진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큰도둑놈의갈고리는 기본종인 #도둑놈의갈고리 를 비롯하여 긴도둑놈, 개두둑놈, 애기도둑놈 등 여러 종류가 근연종으로 일가를 이루고 있는 품종이다.
그중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큰도둑놈의갈고리는 씨앗의 크기가 가장 크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품종이다.
큰도둑놈의갈고리를 일본에서는 #등감초 ( #藤甘草 )라 부르는데 열매가 달리기 전의 꽃 핀 모습을 보면 흡사 등나무꽃과 닮은 것에서 그리 부른 것 같고
나라마다 식물 하나를 두고 이름을 만들 때 꽃을 중심으로 볼 것인지 씨앗을 중심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이름도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옛 어른들은 씨앗의 끝부분이 갈고리처럼 생겼고 지나는 사람들에 달라붙어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둑놈이라 부른 것으로 보여지는데
큰도둑놈의갈고리는 씨앗이 완전히 여물지 않아도 씨앗 천체에 잔 갈고리가 있어서 옷에 달라붙는 것을 볼 수 있다.
큰도둑놈의갈고리의 씨앗은 독특한 모양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다.
갈고리진 모양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씨앗을 보면서 안경이라 하는 경우도 있고
무더운 여름날 태양 빛이 강렬하니 그것을 가리기 위한 선글라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농담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은 여름날 바닷가에서 몸매 좋은 여성이 착용하는 여성의 수영복 일부라는 농담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를 들어가며 살펴보면 모두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는 것이 도둑놈의갈고리 집안의 품종들이다.
평소처럼 다양한 야생화를 보겠다고 산행을 했다면 도둑놈을 만나 사진을 찍었어도 부지런히 두어장을 찍고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에 흔들리거나 특성이 나타나는 사진을 찍지 못했겠지만
유독 무더운 올해는 무엇이던 한 품종을 만나면 집중적으로 특성을 살려 사진을 찍을 계획으로 나선 산행이었고
그중에서 이렇게 간혹 만나던 큰도둑놈의갈고리가 무리지어 자라는 것을 만나 땀을 닦아가며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요즘 일상생활 속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스리슬쩍 자신의 이득을 위해 도둑질을 일삼는 것이 눈에 들어와 속이 상하는 일이 많고
도둑놈들이 언제쯤이면 죗값을 치르고 사라질지 고대를 하고 있지만
산속의 도둑들인 도둑놈의갈고리 집안은 번성을 하여 어느 산이던 산속으로 발걸음만 옮기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 자동차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무엇인가 걸리적거림을 느낀다.
발걸음을 멈추고 살펴본다.
어느 틈에 큰도둑놈의갈고리 씨앗이 옷에 달라붙어 있었다.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씨앗을 떼서는 큰 나무 주변으로 던진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이번에는 카메라 가방에 들러붙어 있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도둑놈은 확실한 도둑놈이었다.
미처 익지도 않은 씨앗들이 옷과 가방에 달라붙어 성가시게 하고 있다.
씨앗을 뜯어 살펴보니 이것은 태양을 피하기 위한 선글라스가 아니고 도둑놈이 자신들의 눈빛을 숨기기 위해 쓰고 있는 검은색 안경처럼 보인다.
이번에 만난 큰도둑놈의갈고리가 씨앗이 익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갔으면 좋겠다.
지나는 이들의 옷깃에 달라붙어 많은 곳에서 자리 잡고 자라 어디서나 큰도둑놈의갈고리를 흔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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